십시일밥, '공정경쟁' 싹을 틔우다

2025-03-09
조회수 35

대학생들의 신선한 봉사 활동

교내 학생식당에서 공강시간을 이용해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십시일밥’ 학생들. 이들이 배식, 잔반 정리, 설거지, 청소 등을 해서 마련한 식권은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익명으로 기부된다. 십시일밥에는 현재 20개 대학에서 학생 약 800명이 참여하고 있다. 십시일밥 제공 


“다들 공강시간(강의와 강의 사이 빈 시간)에 뭐하세요?”


개강을 앞둔 지난달 26일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이런 질문이 올라왔다. 대학 캠퍼스에 첫발을 내딛는 신입생이라고 밝힌 네티즌은 “한두 시간의 짧은 공강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도통 감이 오지 않는다”며 글을 올렸다. 순식간에 댓글 수십 개가 달렸다. 친구들과 운동을 하거나 카페에 모여 수다를 떤다는 답변도 있었지만, 대부분 바늘구멍 취업문을 뚫기 위해 도서관에 가거나 온라인 강의를 듣는다고 했다.


이처럼 치열한 스펙 경쟁 탓에 1시간 공강도 허투루 쓰기 어려운 상황에서 친구를 위해 자신의 공강시간을 기꺼이 내놓는 학생들이 있다. 전국 20개 대학에서 진행 중인 ‘십시일밥’ 프로젝트에 모두 2500여명이 참여해 시간을 기부했다. 열 사람이 한 술씩 보태면 한 사람 먹을 분량이 된다는 십시일반(十匙一飯)에서 따온 이름인데, 참여 학생들은 자투리 공강시간에 학생식당에서 봉사활동을 한다. 그 대가로 식권을 받아 취약계층 학우들이 사용토록 하고 있다. 공강 1시간씩 십시일반 모아 친구의 아르바이트 10시간을 줄여주는 일이다.


십시일밥 학생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공강시간을 이용해 교내 식당이 가장 바쁜 오전 11시∼오후 2시 봉사활동을 한다. 배식과 설거지, 테이블 정리, 식권 판매 등을 돕는다.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식권 판매와 배식은 평균 5500원, 식기 세척은 7000원의 시급이 책정돼 있다. 10명이 1시간씩 식기 세척을 하면 7만원이 되고, 이를 돈이 아닌 3000원짜리 식권 23장으로 받는 식이다. 이렇게 적립된 식권은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익명으로 기부된다. 각 학교에서 학기당 두 번씩 식권 지원을 원하는 이들을 모집하고 있다.

십시일밥에 참여하고 있는 김서휘(23·연세대)씨는 “공부하느라 바빠서 봉사에 나설 시간이 많지 않은데, 십시일밥은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교내에서 할 수 있어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프로젝트는 2014년 한양대에서 처음 시작됐다. 교내 식당에서 한 학생이 친한 친구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빈 식판으로 ‘리필’을 받아 한 끼를 해결하는 모습을 본 학생들이 공강시간을 모으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실현되기까지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식당 측에서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숙련도가 낮다”는 이유로 거절하곤 했다. 학생들은 2명이 함께 일하고 1명분 임금만 받겠다는 등의 제안을 해가며 설득하고, ‘365 자원봉사포털’에 가입해 자동적으로 산재보험이 적용되도록 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식당 측에서도 식권 지급이라는 저렴한 방법으로 인력난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 적극 나서게 됐다. 십시일밥은 봉사활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아 전국 소셜벤처 경연대회 대상 등을 수상하며 대학 동아리에서 비영리민간단체로 성장했다. 각 대학 학생식당을 운영하는 대기업과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현재 한양대 건국대 연세대 한국외대 등 20개 대학에서 약 800명이 참여하고 있다. 출범 이후 누적 봉사자는 2500명이 넘는다. 그동안 1억5000만원 상당의 식권 3만4792장을 1887명에게 기부했다. 최문영(21·여·한국외대) 십시일밥 대표는 “참여 대학이 늘면서 관리에 한계가 있어 대학별로 회계 처리, 개인정보 관리 등을 자체적으로 수행해 독립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십시일밥의 목적을 ‘한 끼의 해결’로 보는 것은 근시안이다.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대학에서 경쟁 당사자인 학생들이 스스로 ‘격차’를 줄여 ‘공정한 경쟁’을 하자며 벌이고 있는 일이다. 최 대표는 “대학생의 교육 환경은 출발선부터 격차가 벌어져 있다. 취약층 학생은 여유 있는 친구들이 스펙 쌓고 학원 다니는 시간에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 그들에게 대학은 결코 공정하지 않은 출발선이다. 우리가 하는 일은 좀 더 평등한 환경에서 같이 공부할 수 있도록 시간을 나누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십시일밥 수혜자 설문조사에서 95%가 “경제적 부담을 덜었다”, 66%가 “십시일밥 지원이 없었다면 아르바이트를 더 많이 해야 했다”, 80%가 “아르바이트 시간을 줄인 만큼 실질적인 공부 시간을 확보했다”고 답했다. 기부자의 95%는 “공강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쓰게 됐다”고 응답했다.


십시일밥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라면을 주로 먹고 다니던 식단이 요즘은 밥 위주로 바뀌었다” “지금은 도움 받는 입장이지만 꼭 베푸는 사람이 되겠다” 등의 감사 글이 종종 올라온다. 학생들이 십시일반 내놓은 ‘공강시간’은 캠퍼스에 따뜻한 ‘공감의 시간’을 만들어가고 있다.


십시일밥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한 학생은 “요즘 대학생들은 청년실업, 불공평, 빈부격차 등을 겪으며 사회에 많은 절망과 불신을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시험기간인데도 짬을 내서 식당일을 해주는 학생, 일이 서툴러도 격려해주는 식당 아주머니들을 만날 때마다 왠지 희망을 보는 것 같아 이 일을 그만둘 수가 없다”고 말했다.

십시일밥 2기 대표 최문영씨 “캠퍼스 내 빈부격차 줄여 아르바이트보다 공부에 전념하도록 도울 것”

오전 강의가 끝나자마자 최문영(21·한국외대) 십시일밥 대표는 교내 학생식당으로 달려간다. 능숙하게 앞치마를 두른 뒤 긴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부터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땀이 흐르기 시작하고 화장은 곧 얼룩이 되는 점심시간. 2015년 입학 후 2년 넘게 바뀌지 않는 그의 일상이 됐다.

최 대표는 고등학생 때 SNS를 통해 십시일밥을 알게 됐다. 평소 봉사활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대학생들이 얼굴도 모르는 친구의 밥 한 끼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주는 모습을 보고 동참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국외대 합격통지서를 받자마자 이호영(27·한양대 졸업) 전 십시일밥 대표의 도움을 받아 교내 식당 담당자를 찾아갔고, 외대에서도 십시일밥을 해보자는 논의를 시작했다.

그는 “입학도 하기 전인 새내기가 식당 책임자와 협의하는 건 낯설고 어려운 일이었는데, 고교 시절부터 생각해온 사업이라 꼭 해보고 싶었다. 막상 실현됐을 때는 기쁨보다 봉사자가 안 모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고 말했다. 이 걱정은 기우였다. 개강과 함께 모집을 시작하니 정원 30명을 훌쩍 넘는 70여명이 지원했다. 봉사할 시간이 없는 학생들이 후원금을 내놓는 등 생각하지 못했던 기부의 손길도 이어졌다.

최 대표는 “막상 대학생활을 시작하고 보니 형편이 어려운 학생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됐다”며 “시간에 쫓기는 학생들이 나보다 어려운 친구를 돕기 위해 적극 참여하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식권을 받던 수혜자에서 봉사자로 참여하는 학생들도 있다. “친구들에게 받은 고마운 마음을 돌려주고 싶어 봉사하러 왔다”는 이들을 볼 때 그는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최 대표는 “캠퍼스의 빈부격차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더 많은 소외계층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보다 공부에 전념하도록 돕는 게 십시일밥의 목표”라며 “경제적 문제로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우리가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712560&code=11131100&cp=nv



                                                


한눈에 보는 십시일밥! 👀 

한달에 한 번씩 십시일밥의 소식을 메일로 만나보세요.